삼국지 유비가 놓친 가장 아까운 인재 원탑 

커뮤니티뉴스
G 비회원 0 8 0 0

삼국지 유비가 놓친 가장 아까운 인재 원탑 


원래 유비 휘하에 있다가 조조한테 가서 대성한 인재로는 

 


제갈량 친구이자 후에 위나라 어사중승까지 오르는 서서

 


여포군 토벌에 1등 공신이자 후에 손책에게도 이긴 진등

 


위나라에서 구품관인법을 만든 진군등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건 바로 이 전예라는 인물

 


전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공손찬 밑에 있었던 유비를 섬겼는데 유비가 매우 좋아했다고 함
 


근데 조조가 서주 대효도를 일으켜서 유비가 도겸을 구원가게 되고

 


이때 전예도 유비군 소속으로 조조의 효도를 막았지만 유비가 서주에 주둔하게 되는 바람에 

 


병든 어머니 포함 가족이 유주에 있었던 전예는 결국 유비와 작별하게 됨

 


그 뒤 전예의 활약은 가히 눈부신데

 

1) 유주로 돌아간뒤 공손찬 휘하에서 원소군 왕문의 1만 군대를 격퇴함

 

2) 공손찬 패망 후 선우보란 인물을 따랐는데 원소와 조조 사이에서 고민하던 선우보를 조조에게 항복시킴 그리고 조조휘하가 되어 각지역 태수로서 맹 활약함

 

3) 조조 아들 조창과 함께 오환족 토벌에 따라가 불과 1200명으로 5천여기의 오환족을 팔진도로 격퇴함 제갈량 그 팔진도 맞음

 

4) 관우 북벌 직전 완성의 반란(후음의 반란) 뒤처리를 훌륭하게 하여 반란 잔당들을 귀순시킴

 

5) 그 후 조비대에 오환 교위가 되어 선비족들을 이간시키고 계책을 써서 마성에서 선비족 3만을 격파함

 

6) 그리고 불과 100명만 끌고 오환왕 골진을 찾아가서 왕의 목을 벰

 

7) 이 일로 선비,오환족들은 전예가 오환교위로 있던 9년동안 위나라한테 쪽도 못씀

 

7) 234년 제갈량 마지막 북벌에 호응한 손권을 막기위해 합비신성을 이용한 계책을 마련함, 만총이 승리하는 계기가 됨

 

8) 공손연이 연왕을 자칭할때 사마의 이전에 공손연을 토벌하게 되었는데 손권이 공손연에게 원군을 보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청주에서 오나라의 주하라는 장수를 공격해서 목을 벰

 

9) 그 뒤 고평릉 사변 나고 2년뒤까지 위나라의 명장이자 중신으로 활약하다 80살에 죽음

 

10) 근데 이런 활약에도 너무 청렴해서 궁핍하게 살았다고...

 

한마디로 초 특급 인재였던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유비군에서 위와 같은 활약을 했다면 최소남만을 15년동안 평안하게 한 장억, 보통은 오호대장급이었을 것이다. 그냥 기록만 보면 거의 관,장,마,황,조랑 위연 급 장군 혹은 그 이상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