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왕사남의 흥행으로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죽인건 물론이고 친동생인 금성대군을 사형시키고 안평가문을 멸족했으며, 심지어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엄마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해쳐 유골을 다른지역으로 옮긴 세조가 재평가 받고 있는데 조선에 딱 이와 정 반대되는 가족을 끔찍하게 아꼈던왕이 있음

바로 정종 이방과
실록에 기록된 정종의 기록 몇개를 보면
1. 이방간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정종의 반응
동북은 네가 전에 영솔하였던 군사들이 사는 곳이니 네가 만일 오래 머물면 뒤에 반드시 말이 있을 것이다. 안산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네가 받은 땅은 그 고을에 옮겨 주고, 또 식읍 50호를 주는 것이니, 네가 편한 대로 땅을 맡기고 사람을 부려서 일생을 마치도록 해라. 정월 초하루면 단기(單騎)로 개경에 들어와서 서로 생각하는 정을 펴도록 하자.
반란을 일으킨 동생을 살려줄뿐만 아니라 안산으로 내려가 식읍도 주고, 정월때마다 보자고함
2. 이성계가 2차 왕자의난을 일으킨이후, 이방원이 이성계에게 호위(라고쓰고 감시)를 붙이자 이성계는 이를 매우 불편해함 이때
3. 부왕께서 내게 사람을 보내어 말씀하시기를, ‘나의 시위는 가두어 지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시니, 내가 항상 마음이 아프다. 부왕의 마음이 이와 같으시니, 나와 경들이 부끄럽지 않은가! 지금 한결같이 명령에 의하여 시위를 철폐하고자 하는데, 어떠하겠느냐?" 하고, 인하여 울어서 옷깃을 적시었다. 공후와 재상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모든 일을 일체 교지에 의하겠습니다. 시위도 또한 없애겠습니다." 하니, 태상왕이 대단히 기뻐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왕은 성품이 본래 순후하여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더니, 지금 내게 효도하는 것이 또 이와 같구나!" 신하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아빠의 감시병사를 내림 3. 자신의 아내가 죽어 정종이 슬퍼하자 이방원이 위로 술자리를 만들어줌 임금이 상왕을 받들고 술자리를 본궁 수각에 마련하였다. 날이 저물고 술이 거나하자 임금이 일어나서 춤추며 대언 들을 불러 말하였다. 하였다. 얼마 있다가 상왕이 대비의 훙서로 슬픔이 일어나 환궁하니, 임금이 권하여 만류하지 못하였다 => 잔치를 해도 아내가 죽은게 슬퍼 일찍 자리를 뜬걸 보면 부인과의 관계도 애틋했던걸로 보임 4. 정종의 첩이 바람을 폈을때 (ㄷㄷ) 정종의 첩 중 기매라는 이름의 기생 출신이 있었는데, 바람기가 대단해서 많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아들도 낳았지만 아버지가 의심스러워서 정종은 기매가 낳은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를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후 기매가 가짜 내시와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이 났는데, 원칙대로라면 이는 처형감. 태종과 중신들은 가짜 내시와 기매를 처형하려 했으나, 정종은 직접 태종에게 선처를 부탁하여 기매를 살려주고 가짜 내시만 처형당한다. 기매는 끝까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정종의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종은 인정하지 않고, 대신 죽을 때까지 기매 모자를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첩이 내시와 바람을 피고 아이를 낳았지만, 이를 죽이지않고 보살펴줬다고함 이외에도 20살 가까이 어린 태종과 눈내리는날 장난치고 노는기록들이 실록에 있는걸 보면, 가족애가 정말 대단했던 왕인듯